<인생에서 술이 필요한 순간>

 

 

 

 

- 연애하게 했던 이유로 헤어지는 연애

 

모두들 그렇게 시작한다. 삐딱하게 볼 필요도 없이 그게 자연스러운 연애다. 뭐 이런 새끼를 내가 좋다고 만났을까, 벽에다 머리를 찧을 땐 잘 생각이 안 나지만 호감을 갖고 나를 연애하게 만들었던 이유들이 바로 헤어지게 만드는 이유가 된다는 걸, 우린 너무 잘 안다.

 

 

- '사연팔이'는 횟집에서

 

이상하면 멈춰라. 인생 안 끝난다. 지나 온 길이 아까워서 계속 엑셀을 밟고 있다간 목적지에서 점점 더 멀어진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상하면 멈춰라. 지도를 살피고 신호를 다시 받아도 절대 늦지 않는다.

 

 

- 사람들은 즐겁다

 

서울을 떠나 고작 경기도 어디쯤에 누워 자게된 날로부터 한동안, 불면의 밤마다 형체 없는 시커먼 천장을 향해 눈을 껌뻑거리던 것은 거기가 내가 지내던 곳에서 멀리 떨어져서도, 낯설어서도 아니었다. 단지 떠나온 이유에 대해 납득하기 힘든 잠투정 같은 짓, 그뿐이었다.

 

 

- 도시의 눈

 

어쨌거나 그 문자가 아니었다면, 내 나이 먹음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과연 앞날에 대한 불안함이 사라지는 시기는 언제일까.

기형도는 전쟁처럼 눈이 내리는 도시의 가로등 아래 모여 눈을 터는 사람들을 보며 어디로 가서 내 나이를 털어야 하나 고민했는데, 스무 살엔 서른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고, 서른이 되니 정작 마흔을 바라는 내 자신에 자괴가 든다.

 

 

- 나의 아름다운 정원

 

아무리 옛날에 태어났다지만 현재를 살고 있는데 자기 혼자만 꼼짝없이 멈춰버린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 싶어 할머니라는 존재 자체가 신기하기까지 했다.

 

 

- 여우의 달콤한 포도

 

다만 돈을 지불하고 내 것이 되는 순간이 지난 뒤 지속되는 행복감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는 것. 마치 엄청난 재력가가 고가의 자동차들을 끝없이 사들이며 두어 번 타고난 뒤 차고에 넣어두는 것과 같을. 소유와 동시에 소멸되는 행복감은 또 다른 숫자를 찾게 만들고, 마음의 공허함은 더 큰 구멍을 남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장소와 대상 그리고 그 대상과 나누던 교감과 그때의 온도와 밝기와 들리던 소리와 주위의 공기까지도, 이런 것들은 되짚으면 되짚을수록 사람의 마음을 달뜨게 만들지 않는가. 시간이 흐를수록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나이가 들수록 더욱 선명해지는 행복했던 경험 말이다.

 

 

- 살기 위한 자살

 

어찌 보면 살기 위해 자살하러 가는 기분이었다. 아등바등하며 살아도 번번이 미끄러지던 나를 일부러 먼 곳까지 데리고 가서 아주 깨끗하게 과거의 나를 죽이고 거기서부터 다시 새롭게 살러 가는, 그런 기분이었다.

 

<미니족발과 서울 막걸리>

꼬들꼬들한 미니족에 직접 담근 막걸리의 조화를 알게 된 건 좋았지만, 그때의 기억도 함께 환기시키는 바람에 이제는 선뜻 찾게 되지를 않는다. 인간의 혀는 참으로 신기하게도 기억을 지배하고.

 

 

- 나는 걸레, 나는 행주

 

내가 나이든 체 짐짓 어른인 체, 인생 좀 아는 체하는 이유는 이제껏 살아온 내 삶 중 현재 시점이 최고령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 살 가까이 살아갈 징그러운 생애를 통틀어 나는 이제 막 야구로 4회 말, 농구로 2쿼터, 배구로 전반전 끝나려면 아직 수차례의 랠리가 남아있는데, 따지고 보면 아직 꼬맹이인데, 짜증나 죽겠다.

 

 

 

 

 

 

 

 

 

 

 

 

 

 

 

Posted by 超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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