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176쪽

2013년 07월 24일 출간

 

 

 

 

 

"우리는 모두 타인의 고통 속에서 태어나 자신의 고통 속에서 죽어간다." - 프랜시스 톰프슨

 

 

술만 마시면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을 다 잊어버리는 동네 사람이 있었다. 죽음이라는 건 삶이라는 시시한 술자리를 잊어버리기 위해 들이켜는 한 잔의 독주일지도.

 

 

사람들은 악을 이해하고 싶어한다. 부질없는 바람. 악은 무지개같은 것이다. 다가간 만큼 저만치 물러나 있다. 이해할 수 없으니 악이지. 중세 유럽에선 후배위, 동성애도 죄악 아니었나.

 

 

작곡가가 악보를 남기는 까닭은 훗날 그 곡을 다시 연주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악상이 떠오른 작곡가의 머릿속은 온통 불꽃놀이겠지. 그 와중에 침착하게 종이를 꺼내 뭔가를 적는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거야. 콘 푸오코 (con fuoco) - 불같이, 열정적으로 - 같은 악상 기호를 꼼꼼히 적어넣는 차분함에는 어딘가 희극적인 구석이 있다. 예술가의 내면에 마련된 옹색한 사무원의 자리.

 

 

"악을 왜 이해하려 하시오?"

"알아야 피할 수 있을 테니까요."

나는 말했다.

"알 수 있다면 그것은 악이 아니오. 그냥 기도나 하시오. 악이 당신을 비켜갈 수 있도록."

실망한 기색이 역력한 그에게 덧붙였다.

"무서운 건 악이 아니오. 시간이지. 아무도 그걸 이길 수가 없거든."

 

 

그렇게 한 문장 한 문장 써나가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것은 내 소설이다. 내가 써야 한다. 나밖에 쓸 수 없다.

 

여행자의 비유로 다시 돌아가자면, 오직 나만이 그 세계에 방문했다는, 오직 나만이 그 세계에 받아들여졌다는 확신이 들었던 것이다. - 작가의 말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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