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날은 전부 휴가

 

 

이사카 고타로 (伊坂幸太郎) 지음 / 김소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300쪽

2015년 06월 08일 출간

 

 

 

 

 

어머니가 불쑥 "아까 오카다 씨가 한 말, 좋았어" 하고 한마디 했다.

"무슨 말?"

"기어를 드라이브에 넣으면 제멋대로 앞으로 간다는 말."

나는 어머니의 옆얼굴을 바라봤다.

"왠지 마음이 편해지지 않아? 기를 쓰지 않아도 저절로 앞으로는 가게 되는 거야."

과연 그럴까, 하고 대답하면서도 나는 내 몸에 달려 있을, 보이지 않는 기어를 드라이브에 넣어본다.

 

 

"폭력을 휘두를 것 같은 눈치가 보이면 그때만이라도 피해 있어. 딱히 아빠한테 반항하라는 것도 아니고 아빠를 싫어하라는 소리도 아니야. 다만, 아무리 친한 개라도 그놈이 물려고 하면 피하잖아. 비가 내리면 우산을 쓰고, 말벌이 공격하면 우선은 집 안으로 도망치잖아. 그거랑 마찬가지야. 부모님을 아무리 좋아해도, 맞을 것 같으면 도망쳐."

 

 

오카다는 큰 소리로 웃는다. "곤도 씨도 별종이시네요."

"뭐랄까, 자네는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헷갈리는걸."

"아니 무슨 딸기 맛, 레몬 맛처럼 라벨이 붙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싫은 일이 생기면 바캉스를 생각하기로 했어."

"바캉스란 게, 여름방학 같은 거?"

"휴가라고도 할걸."

오카다 군이 과연 어떤 때 바캉스나 휴가를 떠올리며 현실도피를 하고 싶어 했는지 나는 몰랐다. 다만 나도 그 뒤 살면서 싫은 일이 있으면 바캉스를 상상하며 그 시간을 보냈다.

 

 

"다 그런 거야." 어머니는 말했지만 그 '다 그런 거'가 나는 무서웠다.

그래서 종종, 그 영화를 떠올렸다.

연인을 잃은 주인공이 마지막에 내뱉은 대사다.

"슬픔은 잊어야만 했지. 나에게는 아직 남은 시간이 있었어."

그 말 그대로 나는 아직 열 살이었다. 슬픔은 잊어야만 했다. 남은 시간이 아주 많았으니까.

이따금, 바캉스를 생각했다.

 

 

'공짜보다 비싼 것은 없다.' 이것이다. 우리는 늘 우리의 행동을 통해 그 가르침을 널리 퍼뜨리고 있는 셈이다.

상대의 죄책감이나, 은혜로 여기는 감정을 볼모 삼아 골치 아픈 일을 덜컥 강요하는 것이다.

 

 

"상대의 약점을 잡거나 실수를 이용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기쁘게 해서 빚을 만들어주자, 이거지."

나는 박장대소를 하고 싶은 걸 참았다. "그렇게 잘될까요. 사람이란 공포나 불안으로는 행동해도 고맙다는 마음으로는 쉽게 움직이지 않아요."

"뭐." 미조구치 씨는 뒷문의 작은 디딤판을 딛고 올라간다. "그래도 시험해보는 것 정도는 괜찮잖아."

 

 

"들어봐, 날아가면 8분, 걸으면 10분, 메일은 한순간. 그렇다 하더라도 날 수 있다면 날아야 해. 그런 경험, 안 하는게 손해지."

"하아."

"8분이고 10분이고 큰 차이 없다고 말하는 건 '어차피 인간은 죽으니까 뭐든 상관없어' 하고 말하는 거랑 같잖아."

"같지 않습니다."

"어차피 언젠가는 죽지만 사는 방식은 중요한 거야."

 

 

 

 

 

 

 

 

 

Posted by 超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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