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의 삶을 산다는 것은 무중력 상태에서 무한한 자유를 누리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작은 실망의 순간에도 끝 모를 바닥으로 추락하는 심정을 겪어야 하는 일이다.

 

 

이번에는 부끄러운 점수를 그대로 놔두었다. 이 부끄러움이 내내 뼈아프게 나를 자극할 수 있도록.

 

 

사실 독창적으로 되는 데는 약간의 노력이 필요할 뿐이다. 타고나기 보다는 습관이고 태도다. 그 사회가 중심적 가치관을 어디에 두는지에 따라 사람은 달라진다. 조금 더 성실해지느냐, 아니면 조금 더 독창적이 되느냐.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감히 자신의 뾰족한 생각을 드러내지 못한다.

 

 

내가 투자할 시간, 투자할 돈, 그렇게 해서 딴 학위가 나에게 확실한 미래를 보장할 것인가를 염두에 두고 더 분명하고 안전한 선택을 매순간 계산해야 한다면, 한 순간도 인생은 나 자신의 것이 될 수 없다. 불만은 터뜨리고 욕망은 충족시키면서 사는 것이 건강한 삶이다. 그러나 내가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망이 진정한 나의 욕망인지 아니면 모두가 욕망해야 하는 것이라고 정해진 일반적 욕망의 리스트일 뿐인지를 가늠해 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의 삶은 왜 어느 한순간도 그 자체를 목적으로 살지 못하고, 왜 늘 다른 곳에서 보상받기를 원하는지 가슴치며 물었다. 결론은 역시 그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경제적 효율이 최우선의 가치로 작동하기 때문이었다.

 

 

나의 진정한 욕망을 파악하는 것은 아주 사소한 데서부터 시작된다. 내가 좋아하는 색깔, 옷, 반찬, 영화, 작가, 길, 동네, 나무에 이르기까지.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일일이 묻고 그 목록을 다 모아보면, 자기만의 색깔이 무엇인지 조금씩 드러나게 된다.

 

 

"얼마나 좋아. 하고 싶은 게 많다는 거. 그리고 그걸 다 해볼 용기가 있다는 거. 그럼 너의 인생은 얼마나 풍요롭겠니."

 

 

결국 독서란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는 이미 알고 있는 진리들을 여러 가지 방향으로 다시 환기하고 내 삶에 끌어들이게 하기 위한 것이기도 함을 새삼 느꼈다.

 

 

관습에 저항한 자에게 끊임없이 날아들 전방위 공격이 내 안으로 침투하지 못하게 할 뻔뻔한 자아를, 완전히 다른 궤도의 삶을 구축했는지 여부가 이 선택의 성공의 관건이 될 것이다.

 

 

나는 두려운 것이 없다.
고 말하고 나면 두려운 것이 없어진다.
우리가 갖는 두려움의 실체는 결국 타인의 판단과 평가에 대한 두려움이다.
모든 판단과 평가가 내 안에만 있다면, 두려움따윈 정복하고 살 수 있다.

 

 

오늘이 행복하면, 내일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오늘 나의 삶의 태도가 진실하다면, 내일의 나에 대해서도 신뢰할 수 있다.

 

 

한 우물을 파서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고, 그리하여 인류의 발전을 도모하는 동시에 밥벌이를 해야 한다는 전 인류가 주입시켜온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다. 살아있는 동안 나의 욕구와 관심은 나와 함께 진화할 것이며, 열심히 그 새로운 호기심과 열정에 화답하며 살고싶다. 그것이 나의 진실이다. 그래봤자 1세기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 내게 주어져 있을 뿐이고 나의 관심사는 '문화'라는 거대한 대지 속에서 이리 저리 출렁거릴 뿐이다.

 

 

 

 

 

 

 

Posted by 超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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