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 공상이러고 말하면 공상일지도 몰라. 그러나 공상이 진리를 알아맞히지 못한다고 누가 단언할 수 있나?"
"이보게, 오가와, 자네는 종종 대부호가 하루아침에 몰락한 그 결과 자살했다는 예를 듣잖아. 그러나 그 사람들이 소위 무일푼으로 영락한다는 말은 노동자 계급의 문자 그대로 땡전 한 푼 없어진다는 말과는 전혀 다르다고. 50이나 100 정도 돈은 아직 갖고 있어. 아니, 오백이나 천 혹은 그보다 훨씬 더 가졌을지도 모른다고. 결코, 굶어 죽을 만한 상태는 아니야. 그런데 어째서 자살할까? 즉, 그들은 자신을 천하의 부호라 믿고, 그 신앙 속에서 살아왔네. 그 의식을 남몰래, 어쩌면 공연히 자랑하지. 이 유일한 자부심이 하루아침에 없어졌어. 신앙이 갑자기 자취를 감췄지. 그들은 이미 단 하루도 살아갈 희망이 없어졌다는 말일세."
음...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된 책이어서 - 이 부분은 내가 바보였음. 왜 최근 책이라고 생각했지? -, 다소 실망한 것도 있었지만...
왜냐하면, 오래된 추리소설은, 당시에는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키고 유명해져서 후대까지 내려올 수 있었지만, 그동안 수많은 패러디와 오마쥬, 발전된 반전의 반전을 겪은 현재에는 그다지 놀라운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소설 역시, 그러했다.
뭐 반전이야 없어도 그만이니 그렇다손 치더라도, 중간 중간에 나오는 "추리소설에 나오는 탐정이라면" 이라는 말이 너무 거슬렸다.
그래, 안다고. 추리소설에 나오는 탐정이 아니라고 생각하게끔 만들고 싶은건 알지만, 정도껏 나와야지...
한 두번 나와야, 추리소설에 나오는 탐정이 '추리소설에 나오는 탐정은 이랬을 테지만 나는 아니야!' 라고 말하는 게 역설적으로 느껴져서 재밌겠지만.... 말끝마다 추리소설에 나오는 탐정 타령을 하고 있으니... 거슬릴 수밖에.
게다가, 이 소설이 정말 좋은데 번역이 안나와서, 결국 사장님이 손수 출판사를 등록하고 번역, 표지까지 직접해서 출판하신 거라던데....
그래서 그런지, 아니면 급하셨는지, 표지 퀄도 그렇고, 번역이 좀... 중구난방.. 그리고 오타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심지어 주어(이름)를 바꾸어쓴 부분까지 있었드랬다. ㅠㅠㅠ 많이 아쉬웠음.
몰입도는 나쁘지 않았지만, 재미는 글쎄.... 범인을 찾아내는 개연성은 전혀 없었고, 음.. 있다면 소거법정도? 그마저도 좀 억지.
트릭도 별로.. 그냥 저냥 전체적으로 다 평타. 아, 그래도 과거 사건, 책과 연관시키는 부분은 좋았음.
그리고 이 책을 보실 분이라면, S.S.반다인 의 '그린 살인사건'을 먼저 보는 것을 추천. 번역자께서 스포 안하시려고 범인 이름도 지우면서까지 일부러 신경 써주셨는데...
[살인귀]의 흐름상 '그린 살인사건'의 내용이 워낙 많이 나와서 그냥도 범인이 유추가능....
여튼, 끊임없이 맞물려 일어나는 긴 호흡의 사건이, 짧은 호흡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숨차지 않게 만드는 소설이라 좀 길긴 하지만, 꽤 몰입해서 금방 봤다. 큰 기대 하지 않으면, 나쁘지 않을 듯.